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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란 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밀릭.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음악은 하나같이 광활한 대지를 떠올리게 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이번 앨범도 여전히, 그때처럼 저 멀리 망망대해가 보인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은 고독해 보이지만 우울한 건 아니었고, 끝이 없는 어딘가에서 한 줄기의 희망이 느껴졌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야 그레이의 음악을 듣고, 축구 이야기만 하면 웃음이 날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고, 또 아직도 물을 무서워한다는 천승현은 그동안 어떤 시간들을 보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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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공백이 있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6년 동안 굴곡이 센 롤러코스터를 탔어요. 좋은 일, 안 좋은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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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했어요.

예전보다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조금 다르게 말하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서 사고했었다면 이제는 저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가장 큰 변화이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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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레이블도 차렸네요. 과거에는 ‘나’를 표현하는 음악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성취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정말 달라졌죠.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밤을 새워도 부족할 정도로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해요. 누군가를 책임감 있게 잘 키우고 싶고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전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더군다나 아티스트들의 성향들이 제 각각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 말 더럽게 안 들었거든요. 나와 성향이 맞지 않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정말 멋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인데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의 음악이 잘 보여질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또 건강하게 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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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이 길었던 터라 음악 활동을 접은 것이 아니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습니다. 인스타 피드를 단숨에 밀어버린 것도 한몫했는데요. 새 출발의 의미였나요?

맞아요. 이 정도로 공백이 생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제 스스로를 지탱하는 구심이 무너지면서 컴퓨터 포맷 하듯이 1부터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음악을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꽤 컸는데 다시 돌아온 걸 보면 아직까지 음악을 좋아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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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책을 읽을 만큼 축구를 진심으로, 열렬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꼭 축구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천승현의 삶에 음악이 없었다면 축구의 길을 걸었을까요?

축구 질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초등학생 때 일기장을 보면 "오늘 축구 연습을 안 하면 축구를 그만두겠다", "오늘은 몇 골을 넣었다"처럼 축구 얘기가 태반이에요. 일기장 뒷면에 축구판을 그려서 혼자 상상으로 축구를 하기도 했고요. 부모님의 반대만 없었다면 축구선수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정말 힘들 때 축구가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축구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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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감독이라면 어느 팀을 맡고 싶은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네요.

제가 감독이 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어서 월드컵 우승 가야죠. 밤새 전술 짜고 분석하고... 얼마나 행복할까요?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얼마나 힘든지 가늠이 되진 않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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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묻는 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서 가장 완벽했던 팀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호나우지뉴. 일명 외계인. 그런 말이 있잖아요. 메시는 알고도 못 막고 호나우지뉴는 진짜 몰라서 못 막는다. 축구는 팀 게임이지만 개개인을 봤을 때 호나우지뉴만큼 개성 있고 창의적인 선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장 완벽했던 팀은 아이러니하게도 호나우지뉴가 나간 직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끌었던 바르셀로나 08/09시즌. 선수들도 정말 좋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의 패기와 전술이 미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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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는 고독함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울한 것은 아니고, 끝이 없어 보이지만 저 멀리서 희망이 보인달까요. 너무 어렵게 말했나요.

헉. 음악을 만들면서 제가 생각한 부분들이 잘 전달이 되었을 때 정말 행복해요. 무거운 주제를 최대한 덤덤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결국엔 끝은 희망적인 메시지로 풀어 가고 싶었어요. 그마저도 최대한 덤덤하게 표현을 하려고 했었고요. 더구나 요즘 모든 게 빠르게 소비되는 흐름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더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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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상태를 명료하게 말해주는 곡은 어떤 곡인가요?

Saya Gray - IF THERE’S NO SEAT IN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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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트랙과 두 번째 트랙은 한 곡이라 해도 믿을 만큼 굉장히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밀릭의 복귀를 실감케 하는 사운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곡들은 앨범에서 어떤 스타터의 역할을 하나요?

인트로 'EVERLASTING' 그리고 이어지는 'SEA ANEMONE'는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생각으로부터 출발했어요. 그때 당시에 신비롭게 생긴 해양생물에 꽂혀있었고, 여담이지만 제 핸드폰 이름이 '해삼말미잘'이거든요. 말미잘? 괜찮은데? 하면서 인트로 곡에서는 예전에 썼던 악기를 의도적으로 사용해서 심해 안에 갇혀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이어지는 트랙은 역시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고 싶었어요. 듣는 사람을 깊은 바다로 잘 인도해 주는 인트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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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컬로도 나섰어요. 노래하는 밀릭은 리스너들에게도 처음인데요.

사실 이번 앨범에 보컬을 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피처링 과정에서 여러 난항이 있었고, 전하고픈 메시지를 잘 풀어줄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고 느꼈을 때 제가 해야겠다 결정했어요. 그냥 행동으로 옮겨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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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음 앨범에도, 앞으로도 계속 밀릭의 보컬을 들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제가 보컬을 할 수 있었던 건 음악에 대한 제 욕심이 예전만큼 크지 않았던 게 가장 커요. 하지만 되려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앞으로도 본능적으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잘 담는 데에 집중해 볼 생각입니다. 확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이런 마인드셋이면 또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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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상하리만큼 저장 욕구가 큰 편인데요. 프로듀서라 하면 수십, 수백 개의 폴더 안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천 개의 미완성 곡들이 저장돼 있을 것 같아요. 이를 모두 버리고 0에서 시작할 수 있는 담대함도 있는 편인가요?

저는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제가 구매한 악기들은 다 깔아주셔야 해요.(웃음) 저는 모든 곡을 다 지우고 새로 하는 것보다 프로그램들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 게 더 끔찍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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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물을 두려워한다고 들었어요. 두려움의 대상을 앨범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피하지 않고 부딪힘으로써 극복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물과 가까워졌나요?

여전히 물은 무서워요. 이쯤돼서 뭔가 그렇게 놔두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6년간의 공백을 가장 잘 표현한 소재로 물이 딱 알맞았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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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음악을 만들지”를 궁금해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티스트들이 먼저 찾고, 함께 작업하고 싶은 프로듀서가 되었습니다. 다음 스텝으로는 어떤 프로듀서가 되었으면 하나요?

밸런스를 잃지 않으며 꾸준하게 음악 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습니다. 말로는 쉽지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껴서 그런지 저에겐 굉장히 큰 목표예요. 아 그리고 세상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프로듀서? 아 그건 벌써 된 것 같긴한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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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모든 인터뷰이에게 보내는 공통 질문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주세요.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한 N.E.R.D의 [Seeing Sounds] 앨범에 있는 'Love Bomb'를 꼽겠습니다. 

긴 인터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yesmag!

https://youtu.be/BArd10n9WmQ

밀릭 인터뷰 “저는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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